오래도 다녔다, 퇴사는 처음이지?_대기업을 그만두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_D-27

2024년 2월 5일

오늘의 한 일 : 

오늘의 쇼핑 :  참고 참다 결국 요가복 브랜드 사이에서 핫하다는 룰루레몬을 제치고 미국에서 뜨는 ALO 요가복을 구매했다.  French Vanilla Crop Bra 미디엄 사이즈와  Black Crop Bra Small 사이즈  

 
 – 여담으로 퇴사와는 전혀 관계 없어보이지만, 퇴사 이후에 당분간 수입이 없기에 절약해야한다는 강박 관념이 생겼다. 소비는 정말 필요한 제품으로, 사서 후회하지 않을 제품으로 신중에 신중을 고르게 된다. 
 
저녁 요가 수련을 위해 요가원으로 향했다.
옷을 환복하고, 수련실로 들어섰다.
 
간단한 명상과 함께 수련이 진행된다.
목과 척추의 오른편 ( Lumbar 4-6 번 사이 어딘가)와 오른 고관절의 통증이 느껴졌다. 
 
오랜 사무직으로 얻은 경직된 목과 허리의 통증
그리고 무리하게 웨이트를 하다가 얻은 오른쪽 고관절의 인대염까지
 
깊은 호흡과 함께 수련을 하면서,
내 몸의 통증을 마주하게 된다.
호흡과 동작에 집중해야하지만,
동시에 이렇게까지 통증을 얻어가면서 사무직을 해야하는 건가 라는 왠지모를 자괴감이 든다.
 
일을 하면서 병을 얻고,
일을 하면서 받은 월급으로 병을 고치고,
 
다들 그렇게 사는거지 라는 생각과
오랜 시간 사무직을 해도 이런 통증이 없는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 업무와 관계 없이 그냥 나의 바르지 못한 생활습관 때문이니 
업무를 탓하는 건 순전히 나의 합리화거리, 즉 핑계라는 생각이 교차한다.
 
요가는 나의 몸 에 대한 알아차림과 몸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오른편으로 몸을 기울이고 나면, 왼편으로 몸을 기울여 균형을 맞춘다.
그 안에서 더 경직된 부분을 알아차린다.
 
앞으로 몸을 기울이는 전굴을 마치고 나면
수련의 마지막 단계에서 몸을 뒤로 젖히는 후굴 동작을 진행한다.
후굴 동작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위축된다.
걱정이 앞선다.
 
어려워보이지 않는 동작들임에도 후굴 동작을 수행할 때 몸의 구석구석의 통증이 느껴진다. 견디기가 힘들다.
 
할 수 있는 동작인데 지레 겁먹고 도전하지 않는걸까?
나는 겁쟁인가?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야지 나아갈 수 있는데 그 순간을 나는 참아내지 못하나?
노력이 더 필요한가?
고통을 이겨내면서까지 노력해야하는 걸까?
 
짧은 순간에 마주서는 생각들
 
후굴 동작으로 가슴을 열어내고,
요가의 최종인 송장자세 (사바아사나)에서 평온함과 개운함을 가지고 쉬어야하는데
후굴동작에서 얹어진 우울감 한 스푼, 자조감 한 스푼이 섞여서 뒤척이다 수련을 마무리한다.
 
이럴 때는, 사바아사나에 코를 골며 달게 주무시는 분이 부럽다.
최대한 미간의  지어진 주름을 펴내고 생각한다.
 
퇴사를 하면 나아질까? 핑계일까?
 


상담을 다녀왔다.
 
회사의 복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년의 최대 8번 임직원은 상담 프로그램을 무료료 받을 수 있다.
 
퇴사 전, 
몇가지 성격유형 검사로 나의 강점과 약점을 알아보고,
퇴사 전이 불안감을 떨쳐내보고자 신청한 상담 프로그램
 
상담 프로그램은 100% 비밀로 운영되어,
회사에는 나의 상담 내용이 공유되지 않는다.
(상담 전 계약서상에 명시되어 있다)
 
첫 1,2회차는 성격 유형 검사로 진행 되었다.
진행하면서 상담 선생님과 상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퇴사 전까지 8회차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상담의 주요 내용은,
부모님에게 ‘퇴사’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말씀드리면 좋을지,
당신들에게 ‘퇴사’ 공표로 상처를 드리는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든 받을 상처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 드리는 편이 좋을지에 대해서 상담 8회차동안 풀어내보기로 하였다.
 
상담 내용 중 상담 선생님께서
 
부모님의 상처가 아니라, 은진님이 받을 상처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셨나요?
 
라고 물으셨고. 이 질문에 나는 나의 슬픔, 아픔, 상처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오늘자 주요 상담 내용은
내 기억 속의 부모님에게 받은 트라우마 혹은 상처에 대한 내용이다.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내가 당신들에게 준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해 나는 왜 지우지 못하고 담고 살아가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나도 당신들에게 준 상처가 분명 있을텐데 말이다.
 
내가 받은 유년시절과 성인이 되서 받은 상처는 4가지였다.
사실 한 번도 이 상처들에 대해서 그 누구에게도 끄내어 보여준 적이 없었다.
 
1) 초등학교 시절,
그 날은 밝은 오후였다.
무슨 일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동생은 없고 나 혼자였다.
친구들 모임에서 기분 좋게 취하신 엄마가 집에 들어오셨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라고 말씀드리자
나를 보시고 달려오시더니 때리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한 번도 폭력을 쓰신 적이 없으신 분이였다.
 
폭력이라기라고 해야할까,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가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너무 웃기면 세게 찰싹 치는 정도의 강도로 끊임없이 때리기 시작하셨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방구석으로 움찔거리며 도망가다가 그 상태로 맞고 끝이 났다.
 
아직도 이유는 모른다.
엄마도 그 부분이 기억이 나시지 않기에 아무도 이유도 모른채 폭력을 가했고 나는 맞았다.
 
상담 선생님께서,
 
아버지께 말씀 드리셨나요?
 
라고 물으셨다.
 
지금까지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였다.
 
술을 안 드시던 아버지와 술이 약하시지만 좋아하시던 어머니
 
어린 시절 두 분의 부부싸움은 원인은 하나 였다
바로 ‘술’
 
‘술’을 드시지 않는 아버지는
‘술’이 약하지만 좋아하는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으셨고,
그렇게 모임을 나갈 때면 기분 좋게 취해서 들어오시는 어머니와 크게 다투셨다.
 
이런 부부싸움을 보고 자란 나로서는
아버지에게 이 상황을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서움이 앞섰다.
 
두 분이 크게 싸우시면 어떻하지?
아니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소용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런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나는 술을 마시고 취해서 흐트러지는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부모님에 대한 첫번째 상처
 
2) 신입사원 시절,
유년시절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다.
아버지의 성실함과 할머니의 장사 기질을 물려받은 어머니의 사업 수완으로 
우리 집은 부자는 아니여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아버지이 사업을 접고 어머니의 고향인 목포로 내려가서 시작한 사업이 생각보다 안 풀렸다.
가장 믿었던 엄마의 친자매에게 사기를 당했다.
 
아버지는 심한 우울증으로 주저 앉아버리셨다.
엄마는 매일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셨다.
 
그 와중에도,
내가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다.
부모님에게 자랑이자 한 줄기 희망이였다.
 
신입사원이 되어,
착실하게 돈을 모았다.
몇 개월 부지런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처음으로 ‘예금’을 들었다.
 
엄마에게 말씀 드렸다.
월급을 모아서 ‘예금’이란걸 들어봤다고
 
생활비가 빠듯했던 탓인지라,
엄마는 대뜸 화를 내셨다.
 
나와 의논도 없이 왜 그랬나며
화를 내시기 시작했다.
 
내가 성실하게 번 돈으로 저축을 했는데,
혼이 나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쩌면 그만큼 집안이 힘든데, 나는 집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낙천적으로 생각했을까.
 
엄마 입장에서는 안 풀렸던 사업으로 생활비 등 들어갈 돈이 많은데, 급한대로 월급으로 충당하실 생각이였던거다.
 
월급으로 쇼핑이 아니라 저축이면
분명 부모님으로서 잘했다, 기특하다 칭찬해주실 거라 믿었는데
 
기대와 너무 다른 냉담한 반응에 
나는 얼어버렸다.
이해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엄마도 그 때는 오해가 있었다고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셨지만
 
그렇게 나의 2번째 상처가 생겼다
 
3) 신입사원 시절, 비오는 어느 날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였다.
 
야근을 하고 밤늦게 귀가했다.
 
술을 드신 어머니는 너무 힘들다며 거실에서 엉엉 우셨다.
거실 바닥에 주저 앉아 떼를 쓰듯이 모든 걸 토해내듯이 우셨다.
 
마냥 같이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였다.
 
가세가 기울면서, 점차 나는 나의 슬픔은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늦은 밤, 폭우 속에 갈 수 있는 곳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차에 앉아, 울음을 토해냈다.
 
모든 상황들이 이해되지 않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3번째 상처가 비오는 날 남겨졌다.
 
 
4) 지금으로부터 7년전의 기억, 2018년
 
지방 거점을 오고가며 출장 업무를 맡다가 회사 내근직으로 발령 받았다.
 
언젠가 자세히 쓰겠지만, 18년 1월 성희롱을 당했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도 전이라,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정말 모르겠더라.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못한 채,
한 달을 울면서 회사를 다녔다.
 
혼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부모님께 티비를 보다가 말씀 드렸다.
 
‘회사에서 성희롱 당했어요, 저 어떻게 해야해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부모님의 결론은
 
끝까지 남는자가 이기는 것이다. 회사에 남아라
그래도 대기업의 남아있어라
 
충격이였다.
 
그렇게 아끼는 딸이 성희롱을 당했는데 그 회사에 남으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래도 안정적인 회사에 남아있어야 내가 편하다 라는 입장이셨다.
 
부모님이 화라도 내시면서 감히 우리 딸에게? 당장 그만둬!
라고 해주시길 바랬다.
 
아마 아버지가 계속 기존의 사업을 하고 계셨다면 응당 그러셨을 테다.
기울어졌던 가세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던 때라,
항상 기운이 넘치던 아버지도 그 기운이 빠져있던 때였다.
딸이 회사를 나와서 어려운 길을 가느니 힘들더라도 회사에 있길 바라셨다.
 
집의 한 명은 안정적으로 대기업을 다녀야 대출이 나오고,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니깐 
힘들어도 참아라
 
로 이해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집안의 상황, 딸을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모님의 말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슬픔을 말씀드리고 나니, 후련했다.
 
언제까지 담아두고 살 수 없는 이야기들
 
입 밖으로 내가 끄낼 수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성장했다라고 느끼는 순간이였다.
 
그렇게 D-27일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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